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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은 알고타자 - 사륜구동의 역사] - (1)
매끈하게 다듬어진 고속도로를 벗어나 험한 자연 속에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능력은 일종에 해방감을 준다. 이제는 누구나 사륜구동 SUV 자동차를 이용해 험난한 길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초만 해도 자동차는 포장되지 않은 험한길을 달렸다. 자동차 도로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도심에 있는 도로는 아직까지 보행자와 말 ,전차등이 장악하고 있었다. 교외 역시 따로 정해진 길이 없었다. 초기의 자동차는 어떤 길도 갈 수 있어야만 했다. 현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초창기에 대담한 운전자들은 험한길을 가리지 않았다. 진흙탕 속에 빠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드문일이었다. 고작길이라고 해봐야 마차가 다닐 수 있는 신작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초창기 운전자들은 모험심이 강했을 것이다.어쩜 요즘 사륜구동 애호가들보다 더했을 것이다. 192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각지방엔 도로가 제대로 갖추어진 곳이 없었다. 물론 정비소도 없었다. 따라서 운전 솜씨도 서툴고 즉석해서 수리할 줄도 모르는 상황에서 차를 몬다는 것은 모험이였다. 하지만 아무리 차를 잘 몬다해도 한계가 있었다. 2륜구동의 파워로는 미끄러운길이나 진흙탕,눈길 언덕을 통과하기 힘들었다.

자동차계의 선주주자인 로버트 이 트와이포드(Twyford)는 1899년에 원시적인 방법의 사륜구동방식을 이용한 여러 가지 차를 개발했다. 그외에도 여러사람이 개발을 시도했지만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렀다. 35군데의 회사와 개발자들이 나름대로 사륜 구동차의 개발에 몰두했다고 하는데 겨우 마차를 대처하는수준이었다. 1906년 비로소 시장성을 가진 최초의 사륜구동 자동차가 미국에 등장했다. 미시건주의 뉴플렉스 파워카 컴퍼니(Newplex powercar co)에서 모델B(Model-B)라는 차를 출품했다. 14마력에 두 개의 시린더를 갖춘 사륜구동 트럭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사륜구동차는 1908년 오토자카와 윌리엄메서딕이 최초의 증기기관식 사륜구동을 만들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이 만든 최초의 전륜액슬장치는 미국 자동차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다음해 자카와 메서딕은 증기기관 대신에 45마력의 4개의 실린더 엔진을 장착했다. 그리고 붉은색 차체에 어울리게 배틀쉽(Battleship)이란 이름을 붙었다. 차의 성능을 테스트해본 결과 전투에 나갈만큼 강력한 성능이 입증되자 메이져포휠드라이브컴퍼니(majors Fourwheel drive co)라는 회사를 만들이 전전후 만능차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사륜구동차는 일반차보다 원가가 두배나 들었다. 두배나 비싼차를 사느냐? 아니면 기존에 차를사느냐를 놓고 볼때 험한길에서 애를먹더라도 기존의 차가 더 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사륜구동차의 발전이 다른차보다 늦어지게되었다.1910년 월터워앨런(Walter allan)이 판매부진에 빠진 회사를 인수해 4휠드라이브컴퍼니라고 개명했다. 오늘날에 4wd이다. 월터앨런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사륜구동이라고 해봐야 철공소에서 시험삼아 만들어본 수준에 불과했다. 자사의 차에 자신감을 가진 올랜은 15분동안이라도 산길주행을 따라오는 차에게는 1000달러의 상금을 준다고 공헌했다. 수백명이 도전장을 냈지만 단 한명도 성공하지 못했다. 앨런의 차는 뛰어난 성능을 과시 했지만 자동차시장에서는 호응을 받지 못한채 결국 7대만 생산되고 말았다. 이유는 이 지역이 부유하지 않은 곳이었다. 주로 농부나 벌목꾼들이 살았기 때문에 사륜 구동자동차는 필수품이아니라 상당히 비싼 사치품으로 여겨질 수밖이 없었다. 나중에 트럭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때에도 사륜구동 방식은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4륜구동트럭에 대해 관심을 보인 곳은 다름아닌 미육군이었다. 육군은 군용으로 쓸 만한 트럭을 시험해보기 시작했다. 1911년 차량이 말을 대신할 수 있는 운송수단이될 수 있는지 확인을 하기위해 들판을 횡단하는 운행 테스트를 실시했다. FWD에서 내본낸 배틀쉽은 사륜구동방식의 유일한 자동차였다. 배틀쉽(Battle ship)은 다른차들을 따돌리고 줄곧 다른차들을 압도했다. 진흙탕길을 빼고 경쟁하자는 불평이 나올정도였다. 사륜구동차가 군용으로 최적이라는점은 증명이됐지만 실제로 임무에 투입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뒤에 일이였다. 미육군은 FWD와의 계약에 소극적이었다. 1916년에 가서야 모델B 트럭을 대량으로 구입히가 시작했다. 남사부 국경지대를 공격하던 멕시코 산적 판쵸비아일당을 소탕하기 위해서였다. 토벌작전의 대장 존펄싱(Pershing, John Joseph) 대장은 차량을 이용한 기동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이때 비로서 사륜구동 트럭과 자동차가 군사작전에 처음 투입된 것이다.

그 후 미국이 1차대전에 참전하면서 사륜구동과 이륜구동자동차들이 병력수송과 구급차등으로 널리 쓰이게 됬다. 차량을 보유한 부대는 아무리 험한길이라도 훨씬 더 멀리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장점이 증명됐다. 1940년 닷지의 레이시(Dodge Lacey )트럭이 개발되자 미육군의 대대적으로 보급해 현대적인 기동성을 갖추도록 했다. 기동대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 미육군은 말이 수송수단으로 쓰이는 시대가 지났음을 깨달았다. 사륜구동자동차는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장점이있었다. 다양하고 많은 물자를 멀리 실어나를 수가 있었고 말처럼 병에 걸리지도 않았다. 닷지 레이시 씨리즈(Dodge Lacey series)로 지휘정찰차 ,소형트럭,대형트럭들이 나왔다. 이 억센 수송차량들은 못가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전투차량으로 쓰기에는 너무 크고 둔했다.

독일이 폴란드에서 선보인 전격기습작전은 현대전의 양산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동에번쩍서에번쩍 하는 독일군을 꺽기위해서는 소형만능차가 필요했다. 유럽각국은 독일군의 진격앞에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미국은 독일군을 앞지를 수 있는 튼튼하고 빠르며 어떤길이든 갈 수 있는차를 개발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성과는 현대전의 역사와 양산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말대신 자동차를 새로운 운송수단으로삼으려는 미육군의 새로운 시도는 1차대전이 끝나자 잠시 주춤해졌다. 대형트럭은 병력수송에는 아주 적합했지만 좁은길로 병사들을 실어나를 수 있는 소형차 전투차량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침채된 경제상황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미육군에서는 두세명이 탈 수 있으며 기관총등을 탑제할 수 있는 가벼운 정찰차를 원했다. 1차대전때부터 오토바이를 군용으로 사용했으나 험한 산길을 넘어다니기에는 어려움이 컸다. 이를 대신할 정찰차는 처음엔 사륜구동을 채택하지 않았다. 이때 미육군이 접촉한 소형차 전문회사는 펜실베니아에 위치한 아메리카밴텀카컴퍼니(America Bantam co)였다. 밴텀사는 당시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영국산 소형승용차 오스틴세븐을 모방한 차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당시 밴텀(Bantam co)사 역시 판매가 극히 부진하자 미육군에서 요구하는 소형 전투용차를 만들어 군납계약을 맺는 것만이 유일한 활로였다. 100여개업체가 참여한 입찰에는 당시 유명했던 윌리스 오버랜드사(Willys-Overland Motors)도 참여했다. 1920년대의 명차 휘픽과 막강한 성능의 엘헤드엔진(L-head engine)으로 유명한 회사였다.미육군 입찰을 따낸 밴텀사는 군에서 요구하는 디자인과 성능에는 만족했지만 대량생산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 포드(Ford)와 윌리스(Willys)등의 회사가 밴텀사를 제치고 소형군용차량의 협상에 참여하게 되었다. 결국 엘헤드 엔진(L-head engine)으로 유명한 윌리스-오버랜드 모터스(Willys-Overland Motors)가 최종 선정이되었다. 윌리스가 주도하고 포드와 공급물량을 나눈 윌리스의 군용차는 혁신적인 차로써 확실하게 인정받았지만 당시 이름을 짓지 못하고 있었다. 비트,버프,덕,치기,그네트,미지트등의 이름이 후보에 올랐지만 결국 JEEP로 정해졌다. 지프란 이름은 군에 새로 들어온 병사나 차량을 속어로 지프로 불렸다. 이 이름은 유진더 지프(eugene the jeep)라는 만화 케릭터에서 따왔다고 한다.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마법의 힘을 지닌 케릭터 이름이 바로 지프였다.

미국은 1941년 12월 7일 처음으로 각 부대에 지프차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지프를 처음 접한 병사들은 이 상자곽만한 자동차가 무슨 쓸모가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지프야말로 최전방 함께하는 믿음직한 동반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프의 성능을 시험한 첫무대는 미얀마였다. 스틸윌(Stiwell) 장군의 휘하장병들은 앞에는 일본군과 뒤에는 산악지대에 갇혀있는 상태였다. 지프는 기대이상의 성과를 보였다. 지프는 병사들을 무사히 이동시켰다. 유럽과 태평양의 모든 전선에서 지프는 미국의 필수 장비가 되었다. 전선을 반문한 귀빈들도 이작고 강한차를 의전용으로 사용했다. 영국의 조지국왕, 엘리자베스 여왕, 루즈밸트대통령도 다른 호화로운 자동차를 제쳐두고 이 지프를 타고 야전부대를 방문했다. 지프는 애국의 상징이되었다. 헐리웃 스타들은 지프 퍼레이드를 펼치면서 군비모금 켐페인을 벌였다. 지프는 병사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1945년 종전을 맞이하면서 지프는 현대전 장비중 최고라는 찬사를 얻었다.

이같은 평가에 힘을 얻은 웰리스사(Willys)는 지프의 명성을 민간차시장에서도 이어나가려했다. 그래서 민간용 모델인 CJ-Twoway 모델을 출시해 지프의 실용성과 다기능성을 선전했다. 농업과 산업분야에 타깃을한 CJ 지프는 경운기나 컴프레서,발전기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했다. 최초의 민간용 차는 이처럼 다목적차로 판매되었지만 제대한 병사들이 이차를 구입해서 진흙탕, 언덕길, 숲속을 마음대로 누비고 다니는기분을 즐겼다. 아마 이것이 오프로드 스포츠의 시초가 되었을 것이다. 1946년 윌리스사는 보다 넓은 수요층을 공략하기 위해 최초의 스테이션 웨건을 개발해 출시했다. 지프처럼 강력하고 다용도로 쓸 수 있으면서도 7명이 탈 수 있는 좌석과 후륜구동시스템을 갖춰 가족용으로 적합했다. 1949년엔 4륜구동형식에 스테이션 웨건이 첫선을 보였다. 다용도 가족용 차량이면서 어떤길도 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자랑했다. 바로 이때 지금 얘기하는 SUV(sports utility vehicle)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사상 최고의 4륜구동 지프의 명성에 도전하는 차들이 나왔다. 바로 영국의 웰크스형제(Wilkes)에 의해 개발된 랜드로버 (Land Rover)가 그것이였다.

2부에서는 본격적인 스포츠 유틸리티 4륜구동차량에 대해 글을 올리도록하겠습니다. [스파이더]
* 출처 : History challel / Chrysler / Lend Rover 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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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 2부를 기대합니다.^^